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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날론과 북한의 야심찬 계획
비날론은 1939년 리승기 박사와 일본 연구진이 개발한 세계 두 번째 합성섬유입니다.
김일성은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이렇게 말했죠.
"비날론 공업은 완전한 우리의 주체적 공업입니다.그것은 첫째로 비날론을 발명한 것도 조선 사람이고 그것을 생산하는 공장을 설계하고 건설한 것도 조선 사람이기 때문이며, 둘째로 우리나라의 풍부한 원료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내 풍부한 석탄과 석회석을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화의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김일성의 목표는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고 연간 10만 톤의 비날론을 생산하여 경공업 발전의 초석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예견된 문제와 전문가들의 반대
비날론 공장의 문제는 시작 전부터 명확했습니다.
- 생산 비용 문제: 비날론의 제조 공정은 전기 소모가 많고 제조 단가가 비쌌으며, 폐기물도 다량 발생했습니다.
- 착용감 문제: 비날론은 질기고 뻣뻣하며, 착용감이 좋지 않고 쉽게 줄어드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 경제성 부족: 대중화를 위해 필요한 경제성이 매우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개발자인 리승기 박사와 기술자들이 강하게 반대했으나, 김일성은 이들을 무시하고 강행했습니다.
결과: 실패와 후폭풍
비날론 정책은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옷감의 품질 문제: 질기고 번들거리는 특성 탓에 주민들이 비날론으로 만든 옷을 꺼렸습니다.
- 경제적 부담: 비날론 공장 건설에 투자된 비용은 약 100억 달러, 당시 북한 GDP의 64%에 해당했습니다. 현재 가치로는 한화 약 30~40조 원에 달합니다.
- 국가 디폴트 선언: 1984년, 북한은 공사 도중 자금 부족으로 디폴트를 선언하며 국제 사회에서의 신뢰도를 잃었습니다.
결국 완공된 공장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고, 비날론은 1990년대 이후 완전히 경제적 애물단지로 전락했습니다.
결론
비날론 정책은 북한의 자급자족과 자립 경제를 강조하는 주체사상의 상징으로 시작되었지만, 경제성, 품질, 효율성 면에서 실패하며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국제적 신뢰도 하락을 초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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